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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은 보조식품이 아닙니다.”
    2026-06-28 11:16:14
    관리자
    조회수   37

      가끔 “신앙은 너무 깊이 빠지면 안 된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지나치게 치우친 신앙이나 사이비에 빠진 사람들을 본 경험 때문이랍니다. 그럴 때 저는 조심스레 묻습니다. “저는 어떻게 보이시나요?” 신사적인 분들이시라 대부분 “균형 잡히고 건강해 보입니다”라고 답해 주시지요. 감사한 말이지만 한편으로 ‘건강’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 시대에 오셨다면 어떤 평가를 받으셨을까요? 세례요한이나 사도 바울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셨을까요? 셀 폰을 휴대하고 스마트 워치도 차셨을지 궁금합니다.

      백 명 중에 1명이 성경을 읽으면 나머지 99명은 성경을 읽는 사람의 삶의 태도를 읽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보고, 영원을 소망하며 사는지, 이 땅에서 어떻게 나그네로 살아가는지를 자연스럽게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에 대한 확신을 품고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누군가에게 인생을 항해할 나침반과 등대가 됩니다. 반대로 복음 없이도 괜찮아 보이는 삶을 살면, 세상은 우리의 신앙에서 맛을 느끼지 못하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예배, 목장, 삶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3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세상은 분명한 메시지를 받습니다.

      때로는 중심 없이 주변만 빙빙 돌며 신앙의 성숙이 더딘 인생이 있습니다. “조금 나아지면, 일이 정리되면, 몸이 회복되면…” 하고 미루다 보면, 신앙의 성숙이 멈춥니다. 영이 혼과 육을 지배할 때 영적으로 건강해 집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완벽해졌을 때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올 때 변화시켜 주십니다. 스스로 변화하려 애쓰는 것은 신앙보다는 종교적 열심에 가깝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삶을 가볍게 보완해 주는 비타민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삶의 중심을 붙들어 주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VIP나 세상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해주고 품어주다가 자신도 모르게 닮아가면 곤란합니다. 내가 불타오르지 않는데 다른 사람을 태울 수는 없습니다. 성도는 가짜를 진짜라 속이는 사기꾼도 아니고, 가짜에 스스로 빠진 사이비도 아닙니다. 3축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명품 신앙의 판단기준이 됩니다. 명품 가방은 비오는 날 우산 대용으로 쓰지 않고 내 품으로 안습니다. 예배와 목장과 삶 공부는 ‘상황이 괜찮아지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이 괜찮아지도록 맡겨드리려 달려가는 곳입니다. 3축을 동호회 수준으로 대하기보다는 나를 안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으로 생각하고 마음다해 지켜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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